이렇게까지 일이 안되는 적은 없었는데 요즘은 완전한 활력 제로 상태.
슬슬 걱정의 시동이 걸린다.
난감하다.
2010년 9월 28일 화요일
지난 날의 병신지랄
부제:어제 약 네 시간에 걸쳐 방출한 폭풍트윗 정리
학교 나온 뒤로 내 이름 달고 '내' 생각 정리해서 글을 써본 적이 몇 번이나 되었나.. 있기는 있었나.. 머리가 돌덩어리가 되어가는 중. 잠자리에서 뒤척일 때마다 돌굴러 가는 소리 나고.. 흑.
한국에서 대학 다니다 말고 후랑스 건너가서 후랑스 문학으로 학부 졸업하려니 그때는 정말 무식이 용감. 산 넘어 산, 비 온 뒤에 비 형식으로 졸업은 했지만. 젤 힘들었던 게 라틴어랑 고대프랑스어. 졸업 학점 비중도 높고 심지어 필수과목.
고대 프랑스어 교수는 '재시험도 보러 오지 말라'고 했었지. '와봐야 또 낙제'라며. 흑흑.
하지만 라틴어는 결과적으로 졸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내가 졸업 직전에 받은 소논문 시험 점수(화장실도 못가고 4시간 동안 진행)가 20점 만점에 8점이었는데 라틴어는 말 그대로 외워서 14점 받았었음. 동기들이 놀라 자빠..
후랑스에서는 20점 만점에 10점을 받으면 통과. 대강 통계를 내보자면 한 학과에 50명이 있다고 할 때 25-30명의 학생만이 10점 이상을 받고 기뻐한다. '통과'니까. 12-14점이면 예습 복습 잘하는 모범생. 그 이상은 뭐. 얄미울 뿐이고..
굳이 후랑스에서 학부 졸업하겠다고 그 지랄한 것을 돌아보면 흑흑스러울 뿐이지만 라틴어나 고대프랑스어를 주마간산 격이나마 훑었던 것이 지금까지도 도움이 된다. 또 라틴어 선생님은 참 좋았다. 남쪽에서 온 여자. 수업할 때 말소리가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후랑스 퀼튀르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작가가 나와서 아에네아스 이야기를 하기에 그 시절 라틴어 수업 시간이 생각나서 폭풍 트윗 보내봤습니다. 뒈지게 외웠던 건 당연 다 잊어버리고 스스로 투영했던 인물만 어른어른하네요. 아아.. 청하를 꺼내야 하나..
번외 1]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 듯한데 저 절대 가방끈 길지 않슴미다. 저 지랄은 학부 레벨이고요, 한국 와서 대학원 겨우 '수료'한 게 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 대학원 수료가 자멸 게이지는 월등히 높았. (그래청하를꺼내자.)
번외 2] 어쩌면 내 인생의 이 모든 병신지랄의 근원은 유학시절의 어버버와 무책임한 상상이 아닐까 생각하니 슬며시 어금니가 꽉 물어지는군요. 설겆이하러 감미다.
그 지랄하던 와중에 기억에 남는 건 소논문 시험에서 5점 6점 맞은 사지멀쩡한 (그리고 아마도 띨띨하거나 그저 게으른) 후랑스 원어민 학생들이 수업 필기한 거 빌려달라고 엉덩이 들이밀던 거.
번외 3]후랑스 대학은 수업시간에 출석 같은 거 안부름미다. 다만 출석을 열심히 안했을 경우 시험을 잘 볼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죠. 온갖 과제, 발표, 교수랑 일대일 제비뽑기(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내용 중 어떤 게 걸릴 지 모름) 맞짱(?) 등.
*번외로 빠지며 예기치 못한 병신 지랄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아래와 같이 진부하고도 허무한 급마무리.
후랑스에서 학부 다닌 보람은 그때 설움 같이 나눈 동기들. 요즘도 연락하며 지낸다. 마음이 허전할 때마다 꺼내서 들여다 보곤 하는 늙지 않는 고전소설 같은 친구들이다.
학교 나온 뒤로 내 이름 달고 '내' 생각 정리해서 글을 써본 적이 몇 번이나 되었나.. 있기는 있었나.. 머리가 돌덩어리가 되어가는 중. 잠자리에서 뒤척일 때마다 돌굴러 가는 소리 나고.. 흑.
한국에서 대학 다니다 말고 후랑스 건너가서 후랑스 문학으로 학부 졸업하려니 그때는 정말 무식이 용감. 산 넘어 산, 비 온 뒤에 비 형식으로 졸업은 했지만. 젤 힘들었던 게 라틴어랑 고대프랑스어. 졸업 학점 비중도 높고 심지어 필수과목.
고대 프랑스어 교수는 '재시험도 보러 오지 말라'고 했었지. '와봐야 또 낙제'라며. 흑흑.
하지만 라틴어는 결과적으로 졸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내가 졸업 직전에 받은 소논문 시험 점수(화장실도 못가고 4시간 동안 진행)가 20점 만점에 8점이었는데 라틴어는 말 그대로 외워서 14점 받았었음. 동기들이 놀라 자빠..
후랑스에서는 20점 만점에 10점을 받으면 통과. 대강 통계를 내보자면 한 학과에 50명이 있다고 할 때 25-30명의 학생만이 10점 이상을 받고 기뻐한다. '통과'니까. 12-14점이면 예습 복습 잘하는 모범생. 그 이상은 뭐. 얄미울 뿐이고..
굳이 후랑스에서 학부 졸업하겠다고 그 지랄한 것을 돌아보면 흑흑스러울 뿐이지만 라틴어나 고대프랑스어를 주마간산 격이나마 훑었던 것이 지금까지도 도움이 된다. 또 라틴어 선생님은 참 좋았다. 남쪽에서 온 여자. 수업할 때 말소리가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후랑스 퀼튀르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작가가 나와서 아에네아스 이야기를 하기에 그 시절 라틴어 수업 시간이 생각나서 폭풍 트윗 보내봤습니다. 뒈지게 외웠던 건 당연 다 잊어버리고 스스로 투영했던 인물만 어른어른하네요. 아아.. 청하를 꺼내야 하나..
번외 1]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 듯한데 저 절대 가방끈 길지 않슴미다. 저 지랄은 학부 레벨이고요, 한국 와서 대학원 겨우 '수료'한 게 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 대학원 수료가 자멸 게이지는 월등히 높았. (그래청하를꺼내자.)
번외 2] 어쩌면 내 인생의 이 모든 병신지랄의 근원은 유학시절의 어버버와 무책임한 상상이 아닐까 생각하니 슬며시 어금니가 꽉 물어지는군요. 설겆이하러 감미다.
그 지랄하던 와중에 기억에 남는 건 소논문 시험에서 5점 6점 맞은 사지멀쩡한 (그리고 아마도 띨띨하거나 그저 게으른) 후랑스 원어민 학생들이 수업 필기한 거 빌려달라고 엉덩이 들이밀던 거.
번외 3]후랑스 대학은 수업시간에 출석 같은 거 안부름미다. 다만 출석을 열심히 안했을 경우 시험을 잘 볼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죠. 온갖 과제, 발표, 교수랑 일대일 제비뽑기(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내용 중 어떤 게 걸릴 지 모름) 맞짱(?) 등.
*번외로 빠지며 예기치 못한 병신 지랄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아래와 같이 진부하고도 허무한 급마무리.
후랑스에서 학부 다닌 보람은 그때 설움 같이 나눈 동기들. 요즘도 연락하며 지낸다. 마음이 허전할 때마다 꺼내서 들여다 보곤 하는 늙지 않는 고전소설 같은 친구들이다.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눈물
어제 저녁 미사에 (비신자인) 언니, 오빠 부부도 와서 같이 기도했다.
집에 와서 부모님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어머니, 오빠, 내가 번갈아가며 눈물을 쏟았다.
울다가 웃고,
자기가 가진 허물을 마음껏 내보이다가도
어느새 서로를 받쳐주는
든든한 울타리.
그게 가족인 것 같다.
*저녁 미사 전에 첫 고백성사를 보았다.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나는 사이 그 수분이 마치 강같은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듯 담담하게 느껴졌다.
*오빠는 오늘 아침에 3박 4일 일정으로 교토에 갔다.
집에 와서 부모님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어머니, 오빠, 내가 번갈아가며 눈물을 쏟았다.
울다가 웃고,
자기가 가진 허물을 마음껏 내보이다가도
어느새 서로를 받쳐주는
든든한 울타리.
그게 가족인 것 같다.
*저녁 미사 전에 첫 고백성사를 보았다.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나는 사이 그 수분이 마치 강같은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듯 담담하게 느껴졌다.
*오빠는 오늘 아침에 3박 4일 일정으로 교토에 갔다.
2010년 5월 3일 월요일
2010년 4월 24일 토요일
허트로커(2008)
1.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허트로커(The Hurt Locker)를 국내개봉당일이었던
지난 목요일 저녁 용산 CGV에서 보았다.
2.
기억에 남는 장면은 중사가 군복을 입은 채로 샤워장 안에 들어가
주저앉은 채 괴로워하던 모습.
옷에 묻은 피 때문에 핏물 속에 잠기는 듯한 모양이 나온다.
이도 저도 다 괴롭기만 한 중사의 심정이
(숨을 쉬기도 어려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보다도)
그 장면을 통해 가장 잘 느껴졌다.
3.
이런 영화를 찍어내고야 마는 감독이 누구인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외부 환경이나 조건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는 인간의 모습일 것 같다.
*
영화는 트윗 친구 '볼빅'이 예매해서 볼 수 있었다.
또다른 트윗 친구 '감독님'은 미로 같은 용산역을 흡사 자신의 방인양 활보했다.
*
대학교 1학년 어느 가을 오후에
외출했던 그 차림 그대로
욕조 안에 들어갔던 적이 있다.
물에 젖은 치마가 두 다리 사이로 한사코 무겁게 휘감겨오던 그 느낌을 아직 기억한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허트로커(The Hurt Locker)를 국내개봉당일이었던
지난 목요일 저녁 용산 CGV에서 보았다.
2.
기억에 남는 장면은 중사가 군복을 입은 채로 샤워장 안에 들어가
주저앉은 채 괴로워하던 모습.
옷에 묻은 피 때문에 핏물 속에 잠기는 듯한 모양이 나온다.
이도 저도 다 괴롭기만 한 중사의 심정이
(숨을 쉬기도 어려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보다도)
그 장면을 통해 가장 잘 느껴졌다.
3.
이런 영화를 찍어내고야 마는 감독이 누구인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외부 환경이나 조건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는 인간의 모습일 것 같다.
*
영화는 트윗 친구 '볼빅'이 예매해서 볼 수 있었다.
또다른 트윗 친구 '감독님'은 미로 같은 용산역을 흡사 자신의 방인양 활보했다.
*
대학교 1학년 어느 가을 오후에
외출했던 그 차림 그대로
욕조 안에 들어갔던 적이 있다.
물에 젖은 치마가 두 다리 사이로 한사코 무겁게 휘감겨오던 그 느낌을 아직 기억한다.
2010년 4월 1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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